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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괴산 장암리 산림에너지자립마을 가보니

등유보일러 철거 지역난방 열교환기 설치 한창 산림부산물로 온수·전력 생산 주민조합이 직영 산촌마을 탄소중립·에너지자립 주민 자랑거리

2024-05-13     이상복 기자
충북 괴산군 장연면 장암리 장암·신대 산촌산림에너지자립마을에 열에너지와 전력을 공급하는 담바우 에너지공급센터. 폐교된 옛 장연초등학교 장풍분교 부지에 들어섰다. 

[이투뉴스] “1년에 (등유를) 열 드럼은 썼어요. 따신 물도 편히 못 써보고. 지금은 온수 틀면 뜨겁게 나오지, 살기가 마치(알맞게) 맞아요. 편해요. 기름 떨어질 걱정도 없고.”

백발의 김양순(86) 할머니가 얼마 전부터 등유보일러를 대신해 난방과 급탕을 공급하는 마을 지역난방의 장점을 설명했다. 벽돌과 시멘트로 외벽을 두른 구옥(舊屋)엔 “영감 살았을 땐 썼다”던 아궁이와 무쇠솥이 그대로다. 방안 온도는 24.1℃로 훈기가 돌았다. “천식으로 숨이 찬데 기름은(보일러는) 춥고, 그것보다만 (돈이)안 들면 좋지요.”

지난달 24일 충북 괴산군 장연면 장암리 장암·신대 산촌산림에너지자립마을. 한평 남짓한 김할머니댁 뒤란의 보일러실을 300리터 온수탱크와 벽체형 열교환기가 차지하고 있다. 이날까지 자립마을 조성사업에 참여한 62가구 가운데 19가구가 기존 개별 보일러를 철거하고 이런 지역난방 설비를 들였다. 등유보일러나 화목보일러, 드물게는 심야전기와 연탄을 사용하던 주민들이다. 그런 산촌마을에 신도시에서나 누리는 지역난방이 공급되면서 화석연료 보일러와 굴뚝이 사라지고 있다. 

변화는 1999년 폐교된 옛 장연초등학교 장풍분교 부지에 마을 열병합발전소에 해당하는 담바우 에너지공급센터가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440kW급 목재칩보일러가 시운전에 들어갔고, 68kW급 열병합발전기가 내달 시동을 건다. 운영은 담바우에너지협동조합이 맡을 예정이다. 열공급을 받는 장암마을 44가구와 신대마을 18가구 주민들이 가구당 70만원씩 출자해 지난 3월 설립했다.

담바우 에너지공급센터의 보일러와 열병합발전기의 연료는 마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다. 산림비중이 76%에 달하는 괴산군에서는 산림가꾸기 등을 통해 매년 7만여톤의 목재가 생산된다. 센터는 연간 약 700톤의 미활용 목재를 사용할 예정이다. 군은 장연면 군유지에 연간 1만톤 규모의 목재칩 생산공장(산림자원순환센터)을 짓고 있다. 이 시설을 활용해 경제적인 가격으로 연료를 공급할 계획이다.

담바우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신성문(68) 장암리 이장은 “꼭 유치하고 싶던 숙원사업이다. 주민이 편하고 얼마나 좋으냐. 특별시에도 없는 걸 주민이 200명이 채 안 되는 군(郡) 마을에 놓았다”면서 “마을 자랑거리가 생겼으니 주민이 지금보다 화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이장은 20년 가량 쓰던 심야전기 축열탱크를 철거했다.

등유보일러(기름보일러)나 화목보일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300리터 축열조와 열교환기(우측 녹색)를 들여놓았다. 마을에서 굴뚝과 화석연료보일러가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권준예 할머니댁 보일러실 내부
괴산군 산림에너지자립마을 담바우 에너지공급센터 개요도 ⓒ나무와에너지 제공

보일러와 굴뚝이 사라지는 청정 산촌마을
폐교부지에 나무 때는 보일러·발전기 설치

‘고온·고압 지역난방’.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포장된 1차로 마을도로 위에 황동색 라인마크가 띄엄띄엄 박혔다. 무단 굴착으로 매설관이 파손되지 않도록 설치한 표식이다. 장암·신대마을에 깔린 열배관은 모두 7.17km. 나무를 때 80~90℃로 가열한 물이 도로 아래 80cm 깊이로 묻힌 배관을 따라 흐르다가 필요한 가정에 필요한만큼 온기를 넘겨주고 있다.

각 가정에 설치된 열교환기는 이렇게 외부에서 공급된 열을 받아 가정 내부 급탕·난방용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300리터짜리 급탕용 축열조를 55℃로 유지하면서 외부온도가 21℃ 이상 올라가면 스스로 불필요한 난방을 중단해 요금을 줄여준다. 고령의 주민들이 따로 열교환기를 조작할 일이 거의 없다. 

오는 7월부터 정산시스템이 가동되면 각 가정 사용량에 비례한 난방비가 부과될 예정이다. 모든 가구의 열공급 상태나 사용량은 가공(架空) 통신케이블을 통해 담바우 에너지공급센터로 실시간 수집된다. 난방비를 기존 개별난방보다 25~30% 낮추는 게 목표다. 권준예(88) 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 밤에는 버선을 신고 잤었는데, 엊저녁엔 뜨시게 잘 잤다. 틀면 뜨신물이 바로 나오니 좋다”고 말했다.

'장암리는 산림바이오 지역난방이 공급되는 마을' 아스팔트로 포장된 마을도로 위에 배관 매설을 알려주는 황동색 라인마크가 일정 거리마다 설치돼 있다. 무단 굴착으로 매설관이 파손되지 않도록 설치한 표식이다. 장암·신대마을에 깔린 열배관은 모두 7.17km이다.

장암리 마을길을 따라 약 500m 거리에 있는 옛 장풍분교. 을씨년스런 폐교 교사(校舍) 뒤편으로 깔끔한 외양의 담바우 에너지공급센터가 들어섰다. 스키드로더가 건조저장고에 쌓인 목재칩을 한 삽 크게 떠 연료저장고에 넣고 있다. 두 칸으로 분리된 저장고는 열병합발전기와 목재칩보일러가 각각 2주, 1주간 사용할 수 있는 목재칩을 저장·공급하는 연료창고다. 시간당 소비량은 열병합 58kg, 보일러는 110kg이다. 온마을이 함께 쓰는 양치고는 생각보다 적다.

어른 어깨높이로 목재칩을 쌓아 놓은 건조저장고 바닥을 이 대표가 손으로 쓸어내자 구멍이 뚫린 타공판에서 아랫목처럼 열기가 올라왔다. 열병합발전기 냉각열과 목재칩보일러가 가동되는 센터 내부 공기열을 끌어와 젖은칩을 말리고 있다. 방금 파쇄한 생목의 함수율은 약 50%인데, 이 저장고에 10시간 가량 쌓아둔 칩의 함수율을 37%로 떨어졌다. 적은 에너지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고민이 마을 단위 분산에너지 시스템 곳곳에 녹아들어 경제성을 높이고 있다.

설비 설계·공급사인 ㈜나무와에너지의 이승재 대표는 “국내 어떤 에너지시설에서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시스템과 구성”이라며 “순환펌프를 포함한 소내 최대 소비전력이 15kW에 불과하다. 고효율 설비와 설계로 운영비를 기존 산림에너지 자립마을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담바우 에너지공급센터 내 목재칩보일러 담온 앞에서 (왼쪽부터)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와 신진우 괴산군청 정원산림과 주무관이 불꽃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우측 회색 원통형 구조물이 축열조이다.

마을도로에 80cm 깊이로 열배관 7.17km 매설
"운영비 기존 산림에너지마을 3분의 1 수준"

에너지공급센터 내부는 식품공장처럼 말끔했다. 조합 62가구와 향후 공공시설의 에너지공급을 책임진 녹색 큐브 형태의 목재칩보일러 ‘담온’이 한창 온수를 덥혀 2만리터짜리 회색 축열조 2기를 채우고 있다. 축열조 상부온도는 77℃, 하부는 68℃를 가리켰다. 각 마을을 순환하는 열배관 내 온수와 각 가구 축열조 온수까지 합하면 공유하는 열에너지가 7만 리터에 달한다. 한겨울에 보일러와 발전기가 동시에 고장 나도 10시간을 난방하는데 끄떡없는 양이다.

모든 시설 운영은 자동화 돼 관리자 1~2명으로 너끈하다. 목재칩을 가스화 해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열병합설비는 아직 한전과 전기안전공사 인·허가와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괴산군은 지방소멸기금 30억원을 활용해 센터 인근 장풍폐교를 리모델링한 뒤 주민 커뮤니티시설, 공동목욕탕 등을 갖춘 산촌청년공동체 활성화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담바우 센터를 건립하면서 이를 위한 열배관을 미리 빼놨다.

신진우 괴산군 정원산림과 주무관은 “마을에 기름을 배달하는 주유소 2곳에서 1년 치 내역을 확인해 보니 가구당 난방비 지출이 280만원이나 됐다. 이를 200만원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면서 “탄소중립이란 중차대한 국가 과제 달성은 민·관 협력과 역할 분담이 가장 중요하다. 산림부산물로 경제적인 지역에너지자립과 에너지효율화가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스키드로더가 건조저장고에서 함수율을 낮춘 목재칩을 연료저장고에 투입하고 있다.

올 하반기 준공을 앞둔 괴산 산촌산림에너지자립마을 조성사업은 국비 22억1000만원, 지방비 26억4000만원, 지방소멸기금 15억원 등 모두 63억5000만원을 재원으로 추진되고 있다. 산촌에 풍부한 산림을 활용해 난방열과 전기를 생산·공급하는 분산에너지 자립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이 사업의 목표다.

신 주무관은 2021년 9월 공모사업 공고가 뜨자 “내 나이 팔십에, 무슨 지역난방이냐”며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며 사업 수주를 이끌었다. 횡성, 양평, 화천 등에서 추진된 유사 사업이 설계 실패와 운영비 과다, 주민 갈등 등으로 결국 좌초되거나 부실화 돼 ‘산림에너지자립마을은 안되는 사업’이란 인식이 강할 때였다.

하지만 독일·오스트리아 등에서 같은 시설 수천개가 주민들의 큰 호응속에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보고 제대로 된 초기설계와 적정 설비구성, 나눠먹기식 입찰 근절이 성패를 가른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사업 초기 빠른 의사결정으로 주민참여를 이끈 신성문 이장과 '한국도 성공한 바이오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칠전팔기 도전해 온 이승재 대표를 만나는 운도 따랐다.

신 주무관은 "5월말에 산림에너지자립마을 위탁조례가 제정·공포될 예정"이라며 "이 사업을 기반으로 산림에너지자립마을이 확대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는 "센터가 준공되면 마을의 난방과 급탕을 공급하고 전력을 판매해 연간 1300만원 이상의 순이익을 낼 수 있을 전망"이라며 "정부가 소규모 탄소중립사업 REC(신재생공급인증서)를 우대하고 신재생열의무화(RHO) 제도를 도입해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괴산=이상복 기자 lsb@kalonggou520.com

바이오매스 가스화기기와 열병합발전기
준공을 앞둔 담바우 에너지공급센터 앞에서 신진우 괴산군 정원산림과 주무관과 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사 사업이 설계 실패와 운영비 과다, 주민 갈등 등으로 결국 좌초되거나 부실화 돼 ‘산림에너지자립마을은 안되는 사업’이란 인식이 강할 때 의지와 신념을 갖고 뛰어들어 괴산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주역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