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부대표(기후전문가)

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부대표(기후전문가)
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부대표(기후전문가)

[이투뉴스 칼럼 / 고은] 대의 민주주의는 전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체제지만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는 취약점이 두드러진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정책은 몇십년의 긴호흡을 가지고 추진이 되어야 하고, 그 결과가 서서히 다음 세대에 걸쳐 드러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을 4, 5년 임기를 가진 선출직 공무원이 번복없이 일관되게 추진하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번 22대 총선 유권자 중 30% 이상이 60대 이상이고, 선출된 국회의원의 40% 이상이 60대 이상이었다. 여생동안 기후변화의 영향을 겪지 않을 사람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기후변화는 늘 후순위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제도 탓만을 할 것은 또 아닌 것이, 꽤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절차를 거쳐 기후 정책을 차곡차곡 추진해 나가고 있다. 왜 어떤 국가의 민주주의는 기후 대응이 가능하고, 우리나라는 힘든 것일까. 고민 끝에 필자가 닿은 이유는 사회 내 공유된 지식의 범위와 숙의 기간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다. 기후 이슈를 잘 알고 있는 국민의 비율과, 이 이슈가 사회 내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논의하고 고민되었느냐의 차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국민에게 기후 이슈는 뉴스에서 본 유럽의 폭염 이야기, 길가다가 마주친 환경단체의 시위 정도를 떠올리게 한다. 생사를 위협받던 전쟁, 분단, 빈곤의 현대사를 지나며 나의 노년, 내 자식, 손주 세대의 지구를 생각할 여력이 없던 우리나라에서 기후 이슈가 논의된 기간은 턱없이 짧다.

이제부터라도 범국민적으로 기후변화를 잘 이해하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온실가스가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킨다는 기본적 팩트 외에도, 오늘 내가 구매한 제품이, 회사에서 내린 결정이, 뉴스에서 들은 새로운 법이 기후변화를 악화시킬지 완화시킬지 삶과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게 배우는 기회가 필요하다. 

최근 유럽의 한 정책 연구자로부터 오스트리아 기후 의회(der Klimarat)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접한 바 있다. (독일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을 오스트리아에서도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 정부가 오스트리아 국민 중 성별, 연령, 소득수준, 교육수준, 직업군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 1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6주간의 주말동안 기후변화에 대해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과학자들로 구성된 자문단의 도움을 받아 교육이 진행되며 교육 후 이익단체들, 정치인들과 사회 분야별 현안에 대해 토론하면서 정책제언을 도출하는 강도높은 워크샵에도 추가로 참여해야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6주간의 의회 활동이 끝나면 평범한 시민 중 하나던 구성원들이 모두 기후변화에 열정적인 시민으로 변화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지식과 사안의 중요성을 개개인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정책으로 연결되는 이슈들을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실험적이고도 혁신적인 프로그램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을 의무화하는 움직임도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다.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로 기후변화를 국립교과과정 내 의무과목으로 포함했고, 미국 뉴저지주는 초, 중, 고등학교의 모든 과목에 기후변화를 포함시킬 것을 의무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수준의 교육과 인식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 없다고 꼭 비관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빠른 미래에 그 방향에 도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 그때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배움은 아쉽지만 국민 개인의 몫이다. 다행히 최근 1-2년 사이 눈에 띄게 좋은 컨텐츠와 교육자료, 읽을거리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유튜브나 포털에서 검색만 잘해도, 서점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만 수만가지의 정보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 훗 세대에 위험을 전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대답을 하려면 우리가 선출한 대표자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초당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야하고 결국 똑똑한 시민들이 해낼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라도 더 배우고 알아가면 된다. 더 찾아보고 더 읽어보고 더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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