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이투뉴스 칼럼 / 하정림] 최근 헌법재판소의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이 법조계 일각에서도 상당히 화제였다. 공통된 반응은 “우리나라에서 이런 결정이?”였다. 헌법불합치 결정 자체도 많지 않지만, 이 사건과 같이 환경 관련 분야에서 환경권 등 침해를 이유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본 사례는 그 중에서도 더욱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기후소송 동향 역시 고려한 전향적 결정이라고 보인다.

이 사건은 청구인이 청소년, 태아 등으로 매우 다양하였고, 2020년 3월경 제기된 최초청구(2020헌마389) 사건을 비롯하여 네 건의 헌법소원 청구가 병합된 건이었다. 주요 주장취지는 구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기본법 등 관련 법령과 감축계획 등이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 감축목표로서 불완전/불명확하고, 대통령령으로 위임한 온실가스 감축량(2018년 대비 40퍼센트) 등이 저조한 등으로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 청구인들의 생명권, 환경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 등이었다(청구내용은 매우 정치하고 다양하지만 아주 간략히만 정리해보면 위와 같다).

헌법재판소는 청구인들이 주장한 “2018년 대비 40% 감축” 목표비율의 수치 자체로는 위헌적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감축목표에 대하여 어떤 형태의 정량적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점진적, 지속적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없으므로, 이는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인 바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하여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 환경권 등을 침해한다고 보았다. (아마 입법/행정부의 재량권 행사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었겠지만)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 등을 꼼꼼히 설시한 후, 막상 상당히 과소하다고 볼 수 있는 감축비율 등 시행령 부분과 감축계획에 대하여 기각결정이 이루어진 부분은 다소 아쉽다. 다만 결정문 자체에서도 명시되어 있듯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 등에 대하여 상세한 사실인정을 하고, 구체적인 기본권 침해 등을 인정은 하였던 점, 그리고 기각되더라도 의견 자체는 이른바 “5:4” 결정으로 다수의견이 위헌이었던 부분은 인상적이다. 보통 “5:4” 결정이 반복되면 시대변화의 흐름에 따라 위헌결정이 나는 경우가 상당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 사건 결정문 역시 추후 기후소송에 새로운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구인들이 주장한 위헌적인 심판대상 법령 등은 상당히 방대하였는데, 그 중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하여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참고로 동법 시행령 제3조 제1항 및 부문별/연도별 감축목표 또한 재판관 다수의견이 환경권 침해로 위헌이라는 의견이었으나, 헌법소원 인용에 필요한 심판정족수(6명)에 이르지 못하여 기각되었다(이른바 5:4 결정). 결정문 중 법리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헌법상 환경권 해석과 관련해서는 국제적인 기준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 평등권 판단의 준거집단을 현재세대와 미래세대로 잡은 점, 특히 미래세대에 대한 보호의무를 헌법전문(“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에서 추출한 점 등이다. 결정문은 또한 상당부분을 과학적으로 “위험상황으로서의 기후위기” 관련 사실관계 인정에 할애하고 있는데,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우려하는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사실인정한 부분 역시 상당히 전향적이라고 보인다. 향후 기후변화 관련 소송 등에 자주 인용될 리딩케이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인용된 한 청구인의 진술을 인용해본다.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위 진술을 결정문에 직접 인용하면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입법은 미래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하여 현재의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성격을 띠고, 미래세대일수록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한 참여에 제약이 있으므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입법의무 이행에 대해서는 사법적 심사의 강도가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였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법조계의 시각에서 볼 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한 문구이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변화의 물줄기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이 사건 결정을 위해 애쓴 청구인들과 대리인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향후에도 미래 세대인 젊은이들의 작은 시도가 모여 큰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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