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성 에너지와공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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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뉴스 칼럼 / 김윤성] 바다에서 대규모로 개발되는 해상풍력은 계획입지제도가 시급하다. 21대 국회 입법은 무산되었고, 지금 논의도 기대만큼 속도가 붙지 않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면 법안을 보다 발전시켜서 얘기해 볼 타이밍이 아직 늦지는 않았기도 하다. 관심있는 의원실과, 그들과 함께 준비하는 단체, 관계부처에서 아직 법안을 만지고 있다면 21대에 나온 해상풍력촉진법안의 밑그림이 된 오래된 법을 하나 보고, 이 그림자를 지울 수 있기를 바란다.

바탕에 깔린 법은 바로 그 유명한 전원개발촉진법이다. 전원개발촉진법은 1979년 군사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다. 당시 경제발전으로 전력수요가 연평균 70%씩 늘어 전원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 법으로 여러 개의 석탄발전소가 빠르게 만들어졌다. 이 시절은 세상도 에너지산업도 지금보다 단순했다. 국영기업인 한전은 송배전, 발전, 판매를 모두 맡았다. 서슬 퍼런 권위주의 정부라 국민들은 나랏일이라면 재산과 생존에 피해가 있어도 차마 반대하지 못했다. 

사회는 민주화되었지만 이 법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그 결과 개발법 체계가 갖추어야 하는 몇 가지를 갖추지 못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첫째, 사업계획을 공고하고 토지를 수용하는 공적 존재인 사업시행자가 없다. 대신 사업으로 이득을 얻는 사업자가 사업시행을 한다. 둘째, 입지를 미리 살피는 지구지정이 없다. 셋째, 비용부담의 원칙이 없다. 

우선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살펴보자. 우리사회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전문가뿐 아니라 주민과 이해관계자의 의견도 수렴한다. 개발사업은 실패확률도 높지만, 성공하면 수익률이 엄청나다. 하지만 입지를 구하기 위해서는 토지수용 과정이 있으므로 전체 절차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사업이 공익성이 높아야 한다. 사업시행자는 개발사업의 공익성과 객관성을 대표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국가 또는 지자체’가 맡는다. 그래서 사업시행자는 계획을 발표하고, 사업자를 대신해 토지를 수용하고, 도면을 고시해서 그 계획이 효력을 발휘하게 한다. 사업시행자는 이해관계자와 다르다. 그런데 이걸 전원개발촉진법에서만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사업자가 맡는다.

이 법을 제정할 때 한전은 전력생산과 공급을 책임지는 유일한 기업이자 국영기업이었으므로, 국가를 대신한다고 여겼을 수 있다. 하지만 토지수용은 개인의 자산을 공적인 목적을 위한다는 이유로 강제로 매입하는 강력한 개입이다. 내 땅을 강제로 매입하는 존재가 국가나 지자체라면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도 아닌 특정 기업이라면 어떤가, 그 기업에 분노가 집중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두 번째로 개발사업에서 입지를 결정할 때는, 도시계획위원회 등이 심의하면서 지방의회나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다. 그런데 전원개발촉진법에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들어가면 바로 전원개발사업예정구역으로 지정된다. 지역 의견을 물은 적이 없으므로, 주민입장에서는 일방적인 통보로 느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결정으로 자산의 강제매각이 결정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2010년대 초반 밀양 송전탑 건설로 극심한 사회갈등이 일어났던 주요한 이유이다. 공기업이지만, 하나의 기업인 한전이 주민들과 직접 부딪치게 했기 때문에 갈등은 더 커졌다. 

세 번째로 비용부담 원칙이 없는 이유로, 전원개발촉진법은 그 비용을 사업자, 또는 사업시행자에게 부담시키지 못하고, 발전소주변지원법과 송전설비지주변법을 별도로 만들어야 했다. 해상풍력촉진법안은 2020년대 제도인데 문제는 여전하다. 사업시행자를 수혜자인 개발사업자가 맡고, 비용은 누가 낼지 분명치가 않다. 오직 민관협의회를 통해 입지를 결정한다는 내용만 추가되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왜 계획입지가 필요했던가? 무분별한 입지선점으로 어업인 등 기존 해역이용자와 갈등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지금처럼 사업자가 토지수용을 하도록 결정된다면, 민간이 민간의 자산을 제한 없이 강제매입할 수 있다. 갈등은 불에 기름 붓듯 뻔하다.

수용성을 얻는 핵심으로 이익공유가 거론되지만, 핵심 수단인 주민참여제도는 관리의 사각지대이다. 주민참여는 주민이 투자에 참여했을 때 이익을 나누는 제도인데, 현실은 주민이 실제 투자한 경우는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주민들은 지자체가 무조건 지급하는 기초연금 같은 것으로 오인한다. 수용성을 얻는 데 비용이 든다면 그 비용은 사업으로 이익을 얻는 사업자가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도 아닌 전기소비자들이 지불한다. 투명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아서 안타깝다. 비용부담의 원칙이 명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이다. 해상풍력법에서 전원개발촉진법을 지워야 한다. 그래야 시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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