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이투뉴스 칼럼 / 최원형] 올여름 날씨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뉴스를 들으며 6월을 맞았다. 폭등한 대파 가격이 총선의 주요 변수가 될 정도로 기후 문제는 이미 식탁 위까지 점령해버렸다. 해마다 강도가 더 센 기상 뉴스를 접하게 될 거라는 걸 이제 누구나 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섯 번째 멸종을 이야기한다. 한때 지구의 구성원이었던 여행비둘기나 검치호가 사라진 그 멸종이 아니다. 적어도 생물의 70% 이상이 사라지는 대멸종이다. 무시무시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섯 번째 멸종을 말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우리 인간은 그 멸종을 빗겨나 있는 게 확실하다. 어떤 두려움도 없이 커져만 가는 욕망을 좇으며 살고 있으니.

멕시코 유카탄반도에는 직경 180km, 깊이 20km 이상 되는 칙슬루브 충돌구가 있다. 6600만 년 전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소행성이 충돌한 흔적이다. 이 충돌로 이산화탄소, 황 등이 분출되면서 대기를 뒤덮었다. 빛이 차단되니 식물은 광합성을 할 수 없었고 극심한 겨울이 찾아왔다. 식물이 사라지니 초식동물이 사라지고 이어 육식동물도 사라졌다. 덩치가 가장 컸던 공룡을 시작으로 수많은 동물이 절멸의 길로 사라져갔다. 소행성 충돌이 대체 지구에 이토록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는 게 믿기지 않겠지만 소행성 충돌 에너지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의 100억 배에 달했다 한다. 힘은 속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충돌이 원인이 돼 지구 생물의 75%가 사라지며 백악기 제3기 대멸종이 지구 역사에 ‘다섯 번째’ 대멸종으로 기록되었다. 놀라운 건 대멸종에도 살아남은 생물이 25%나 된다는 사실이다. 대체 어떤 생물들이 이토록 운이 좋았던 걸까?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대구광역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금호 강변에는 큰 습지가 셋 있다. 이 가운데 팔현습지에는 오랜 세월 동안 흐르는 강물에 침식되며 만들어진 해식애가 있다. 오랜 세월은 공룡이 살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66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로 어마어마한 혼란이 벌어지던 당시 몸집이 작은 생물들은 바로 이 해식애로 피난을 와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해식애가 숨은 서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덕분이다. 기막히게 운 좋았던 25% 가운데 대멸종의 광풍도 피할 수 있었던 동식물들은 이후로 지구의 종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었다. 팔현습지에는 왕버들군락이 있다. 왕버들 나뭇가지에 연둣빛이 점점이 물들면 팔현습지에 봄이 시작된다. 물가를 좋아하는 버드나무의 우듬지는 새들의 집이 되고 물과 맞닿은 뿌리둘레는 물고기의 집이 된다. 참매, 수리부엉이, 검독수리, 삵, 담비, 수달, 얼룩새코미꾸리까지 무려 14종에 이르는 법정보호종을 포함해 다양한 생물들이 팔현습지를 베이스캠프 삼아 우리와 따로 또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팔현습지가 생물다양성이 유난히 높은 까닭은 금호강 물길이 달구벌을 흐르다 잠시 쉬면서 한숨을 돌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다양한 생명의 보금자리인 팔현습지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금호강 르네상스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국가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이 시작됐다. 금호강과 세 개 습지를 연계하는 생태탐방로가 내년 상반기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대구의 대표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게 대구시의 입장이다. 생태탐방로는 ‘생태 및 문화 자원을 효율적으로 탐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도보 중심의 길’을 뜻하며 2009년부터 전국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국가사업이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으니 좋고 우리 땅의 역사와 문화를 생태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만 그곳에 사는 생명들에게 길을 내도 좋을지 의견을 물은 적이 있는지 그게 궁금할 따름이다. 왜 야생동식물들의 서식지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어야 할까? 대멸종도 피할 수 있었던 숨은 서식처에 탐방로를 만드는 건 그곳을 서식처로 삼는 야생 동식물에겐 너무나 폭력이다.

멀쩡히 살아가던 생물들을 몰아낸 자리에 만들어진 인공물이 과연 ‘생태’일 수 있을까? 그들의 서식지를 교란시키고 그곳에서 살던 생물들이 다 떠나버린 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생태를 보고 싶은 걸까? 아니 그곳에 살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우리 생각해 본 적은 있었던가? 타자의 삶터까지 멋대로 망가뜨리며 얻은 대가가 기후시스템의 붕괴라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제일 앞줄은 아둔한 인간들 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지질시대를 뒤로 하고 현 인류는 거대한 가속으로 성장의 한계치를 이미 넘어섰다. 브레이크 작동법을 잊었는지, 아예 브레이크를 망가뜨렸는지 욕망의 전차는 쉼 없이 달리기만 한다. 종착역이 여섯 번째 대 멸종이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는데도 말이다. 진정 걷고 싶다면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길을 걷는 길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대구의 대표 관광명소가 사람들이 몰려들면 그곳은 더 이상 생태적일 수 없다는 걸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여섯 번째 멸종은 숙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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