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조형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조형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조형희] 최근 이상기후로 인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사망자가 급증하고, 한국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폭우가 쏟아지는 등 전 세계가 자연재해에 고통받고 있다. 이와 같은 ‘기후재앙’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하여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청정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수력 등 다양한 청정에너지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가 설립되어 적극적으로 방안을 수립 중이다. 또한 이러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민간 기업들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술 개발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기후에 따라 변동이 심한 간헐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지정학적 특성에 따라 재생에너지 자원이 불균형을 이루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탄소배출 없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인공태양', 즉 핵융합에너지 기술이 미래 에너지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꿈의 청정에너지로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핵융합에너지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와 달리, 거의 무한한 연료 공급원과 최소한의 방사성 폐기물을 생성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핵융합에너지는 태양의 에너지 생성 원리를 모방한 것으로, 중수소(D)-삼중수소(T) 반응을 통한 에너지 생산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고온, 고압의 환경이 필요하며, 자기장 가둠, 관성 가둠과 같은 다양한 형태가 제안되고 연구되어 왔다. 고온 플라즈마 상태를 유지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가두기 위한 기술적 도전 등이 남아있지만, 특히 민간 혁신기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방식의 핵융합 개념도입 등 최근 연구 성과들은 핵융합 에너지가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가까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탄소중립과 꿈의 에너지인 핵융합에너지의 실현을 위해 전 세계 주요국이 모여 국제협력 연구 프로젝트인 ITER(국제열핵융합실험로) 기구를 창설하고, 우리나라도 KSTAR의 우수한 핵융합연구기술 성과를 기반으로 2003년 참여국으로 합류하면서 더 큰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초, ITER는 실험로의 첫 플라즈마 생성을 기존 2025년에서 8년 연기된 2034년으로 발표했다. 이는 ITER의 실험을 기반으로 2050년에 전력 생산을 위한 핵융합 실증로(DEMO) 개발 계획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ITER에서 DEMO로 넘어가는 순차적 진행이 아닌 병렬적인 연구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에너지부(DOE)는 상업용 핵융합에너지에 대한 대담한 10년의 비전(Bold Decadal Vision) 발표 2주년을 기념하여 '핵융합에너지 전략 2024(Fusion Energy Strategy 2024)'를 발표하여 민-관 협력을 통해 상업용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크게 3가지 전략을 제안하였다.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의 격차(S&T gap)를 연구개발 단계에서 줄이는 계획을 주요 전략으로 세우고, ‘Milestone-Based Fusion Development Program’ 을 통해 민간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중국, 인도 등 ITER 참여 국가에서도 민간 기업이 핵융합 발전 연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과기부-핵융합연 주도로 2023년부터 ‘실증로 설계 준비팀(TF)’을 꾸려 핵융합 전력 생산 실증로 설계를 진행중에 있지만, 그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핵융합 주요국과 같이 민-관 협력을 고려한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통한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전력 생산과 경제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아직 기초연구 단계에 있지만, 상용화 시점을 고려하면 최근 전 세계적인 연구 투자 비율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며, 국가 주도의 공공 연구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을 주축으로 한 민간 주도 연구성과가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특히 해외 빅테크 기업들은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핵융합 기술에 주목하며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안정적이고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뿐만 아니라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인 헬리온 에너지로부터 2028년부터 상업용 전기를 공급받을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OpenAI의 샘 올트먼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소비량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적 에너지원인 핵융합기술 개발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전 세계에는 50개 이상의 핵융합 관련 스타트업이 있으며, 총 62억 달러의 펀딩을 수주하는 등 국가 주도의 연구와 더불어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 및 투자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까지 에너지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새로운 에너지 시대에서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인 민-관 협력 흐름 속에서, 국내 역시 국가 주도와 민간 기업의 병렬적인 투자 및 연구개발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고, 미래 에너지 시대에서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민간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세제 혜택 등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한다면, 우리나라도 국가와 민간 기업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에너지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4년 7월 22일 개최된 제 20차 국가핵융합위원회에서 핵융합 기술혁신을 통한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안)"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요소이며, 단순히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국가 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국외 주요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전략을 세우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조화를 이룰 때, 우리나라는 미래 에너지 시대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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