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초빙교수

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초빙교수
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초빙교수
 

[이투뉴스 칼럼/김수진] 지난 국회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안이 여야 간 입장 차이로 폐기되었다. 법안의 이름과 달리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장이 아니라 사용핵연료 저장소이다. 여야 법안의 핵심 쟁점 사항 중 하나는 원자력발전소(원전) 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소를 별도로 만들되 그 저장소 운영 기한을 원전 설계수명으로만 할 것인지(민주당) 아니면 수명연장을 고려한 기한으로 할 것인지(국민의힘)였다. 원전 운영을 시작한 지 50년 가까이 되도록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발전소 임시저장소의 포화가 임박할 때까지 미루어온 것도 무책임한 노릇이지만, 이 상황에서 두 주류 정당의 정책대안 역시 비상식적이다. 집권여당은 반도체산업, 데이터센터 등 향후 전기 수요가 증대할 것으로 보고 원전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원전부터 짓고 보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어떤가. 문재인정부 시절 탈원전정책을 입법화하지 않았고 현정부의 원전 수명연장에 대해서는 손 놓은 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안에서 설계수명 내의 사용후핵연료만 저장하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합리적인 것이 되려면 우선 원전 수명연장을 저지하는 법부터 입안하는 것이 순리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단지 발전소 부지에 단기저장소를 건설한다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경수로 원전의 경우(월성원전을 제외한 모든 원전은 경수로임) 냉각수조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다. 수조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는 것보다는 지상의 건식저장소에 보관하는 것이 안전의 측면에서는 더 우월하다. 냉각수조는 전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주어야 하는 이른바 ‘능동(active)’ 시스템인 반면 건식저장소는 전기 공급이 필요하지 않은 ‘수동(passive)’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냉각수조에 전기 공급이 차단되어 물이 증발하고 이후 수소폭발이 일어난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전 부지 지역주민들은 튼튼하고 안전한 건식저장소가 영구저장소가 될 것을 우려한다. 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법안에 원전 부지 내 저장소의 수명을 규정하고 이 수명 기간 내에 중간저장소든 최종처분장이든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사업 실패의 역사는 이 사업이 녹록하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간 정부 정책에 대한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불신이 존재한다. 따라서 22대 국회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법안을 다시 상정하고 통과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지역주민들이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방사성폐기물 정책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해야 할 일이다. 

독일은 탈원전정책에 따라 지난해 4월 마지막 원전 3기를 최종적으로 폐쇄했다. 독일에서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에 대한 입법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이루어졌다.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지속적인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에서 1970년대 결정한 암염 광산인 고아레벤을 최종처분장으로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법적 체계를 갖추고 다시 원점에서 고준위방폐성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물색하기로 했다. 부지를 새롭게 선정하기로 했지만 고아레벤도 포함하여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지역주민과 반핵단체의 비판이 지속되었다. 당시 이 문제를 관할하던 독일연방환경부 장관은 고아레벤 주민들에게 정책의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재처리 공장에서 독일로 돌아오도록 예정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더 이상 고아레벤으로 보내지 않고 다른 원전 부지에 나누어서 보내겠다고 결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후핵연료라는 난제를 풀 때도 정부가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신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가 해법을 찾을 때까지 신규 원전의 운영 승인을 보류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독일은 1970년대 후반에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해 발전업체가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 1980년 초반까지 약 5년 동안 신규 원전 건설을 승인하지 않았다. 원전 건설 최전성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것이 상식적이고 순리적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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