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초빙교수

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초빙교수
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초빙교수

[이투뉴스 칼럼/김수진]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 비전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기후위기, 불평등위기, 에너지위기, 생태위기 등 이른바 다중위기 시대에 사회정치 전반에 걸친 전환의 방향성에 관련된 문제이자, 단기적으로는 민간기업의 투자결정에 중요한 시그널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에너지와 관련된 일련의 정부 정책은 일관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 간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정부는 해결방안으로 2023년 분산에너지활성화 특별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정부는 경기 남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메가 반도체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2030년대에 조성될 것으로 보이는 용인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는 현재 수도권 전기수요의 약 4분의1에 해당하는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반도체산업단지에 LNG발전소를 건설하고 대규모 송전선로를 건설해 남동쪽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와 호남지역에서 생산된 태양광 전기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대규모 송전망 건설을 회피하기 위해 지역 내 분산에너지를 확산한다는 취지의 분산에너지활성화법과 명백히 충돌하는 정책 비전이다. 한편으로는 전력수급 불균형이 해결해야 할 긴급한 문제라고 진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정부 스스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은 에너지전환이라는 비전과 향후 전력산업 전환에 일관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독일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천명한 ‘에너지전환(Energiewende)’은 더 이상 기후운동의 슬로건이 아니라 글로벌 표준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보고서에 따르면, 에너지전환의 방향성은 탈탄소화, 전력화, 분산화, 디지털화로 요약된다. 지금까지 중앙집중적 대규모 발전원이 주된 전력공급원이었고 재생에너지가 부수적인 발전원이었다면, 이제 재생에너지가 주된 발전원이 되고 기존의 재래식 발전원이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발전원으로 기능하도록 전력산업이 변해야 한다. 최종 에너지소비에서 현재 약 20%를 차지하고 있는 전기는 난방열과 자동차 연료의 전기 전환으로 계속 그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에 따르면 2050년까지 최종에너지 소비의 절반은 전기로 충당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기의 대부분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한다. 향후 전력산업의 관건은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전력시스템 통합을 위한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정부는 탈탄소에너지원으로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를 조화롭게 발전시킨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그런데 부하조절이 가장 경직된 발전원인 원자력발전이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조절하는 유연성 자원이 될 수 있는지 기술적으로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국내 원자력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수출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원자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그런데 RE100을 내건 글로벌 기업에 반도체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재생가능에너지를 사용해서 반도체를 생산해야 한다. 정부가 구상하듯이 LNG 발전소를 건설하고 원자력 전기를 끌어와서 반도체산업을 육성할 수는 없다.

최근 중국 SF 작가 류츠신의 <삼체> 소설을 원작으로 한 OTT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는 지구처럼 한 개의 항성(태양)이 아니라 세 개의 항성에 둘러싸인 삼체행성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요지는 세 개 항성의 예측 불가한 상호작용과 움직임으로 인해 문명의 부침을 반복하는 삼체행성이 결국 행성 파멸을 앞두고 지구로 향한다는 것이다. 세 개 항성 간 중력 작용과 이에 따른 궤도는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 이는 세 개 물체 간 상호작용을 다루는 고전역학의 삼체문제로 그 해를 구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분산에너지원을 활성화시키고, 수도권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그리고 원자력발전을 확대하겠다는 세 개의 서로 모순되는 정부 정책은 이야기 속 삼체행성 문명의 몰락을 초래한 삼체문제를 연상시킨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이 또 다른 위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부의 일관된 정책 비전이 중요한 이유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