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이 사실을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 이날 윤 대통령은 이렇게 운을 뗐다. 윤 대통령은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세계 최고의 에너지개발기업들이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차분하게 시추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파격적인 내용과 달리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은 시간은 4분 남짓. 대통령은 외교 일정을 이유로 바로 자리를 떠났고,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안 장관은 여기서 한술 더 떴다. 그는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나온다면 이 가치는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정도"라고 설명했다. 

국정브리핑 이후 대한민국은 크게 요동쳤다. 

가장 분주해진 회사는 석유공사. 국정브리핑에선 언급이 일절 없었지만 석유공사는 이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는 공기업이다. 우선 여기저기서 제기된 엑트지오 관련 의문점을 해명하기 바빴다. 지난 2주간 배포한 설명자료는 10여건. 공사는 하루에 한번 꼴로 "관련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적절성을 충분히 검증했습니다", "아직 결정된 바 없습니다"라며 진화에 급급했다. 공사도 조금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이번 발표는 대통령실과 산업부에서도 일부 관계자만 내용을 알고 있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발표 직후 석유공사 한 직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전혀 몰랐던 얘기"라고 했다. 

산업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다. 우선 발표날 저녁 안 장관은 방송국을 돌며 관련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나아가 7일 산업부는 아예 엑트지오 대표까지 모셔와 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물론 그간 밝혀진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를 두고 자원공학과 한 교수는 "엑트지오 기자회견이 아니라, 석유공사 사장이 직접 나왔다면 차라리 말은 됐다"며 "현재 분위기는 엑트지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엑트지오가 세금을 체납한 사실이 알려지자 10일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추가브리핑을 열어 "정부를 대표해 죄송하다. 계약 당시에는 몰랐다"고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관심을 갖는 사안인 만큼 입방아거리도 넘쳐났다. 5일 한 증권사는 '영일만 친구'라는 제목의 시황보고서에서 액트지오 대표를 두고 "히딩크를 닮은 관상으로 사기꾼이 아닐 확률 상승"이라고 분석했다. 이날은 아브레우 액트지오 대표가 방한한 날이다. 논란이 일자 증권사는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고 보고서를 다시 올렸다. 10일에는 엑트지오 국내(한글) 홈페이지가 등장했다. 이 홈페이지 대문에는 "동해 유전의 성공 확률은 대단히 높습니다. ACT-GEO는 대한민국 산유국 꿈을 응원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곧바로 석유공사가 공식 홈페이지가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빠르게 일단락됐다. 홈페이지 등록인도 "도메인 선점 차원에서 만들었으며, 액트지오·석유공사·현 정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장 뜨거운 사안은 주식 얘기다. 대통령 발표 직후 에너지업계에는 축제가 열렸다. 에너지 관련 종목들이 기대감에 일제히 비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스공사 주식이 폭등했다. 이번 프로젝트와 가스공사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3만원을 밑돌던 가스공사 주가는 이날 4만58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같이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자 가스공사 임직원들이 자사주를 대거 처분해 이익실현을 꾀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12일 가스공사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서로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설익은 발표에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지난 2주.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혹은 더욱 짙어지는데 또렷하게 밝혀진 것 하나가 없다. 앞으로 더 시끄러워질 여지가 다분하다. 무엇보다 에너지 업계에 정치색이 묻은 것 아닌가 걱정스러워하는 이가 많다. 그런데 최근 기자에게 한 교수는 이보다 더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뒤숭숭한 국면을 전환하려고, 반전카드용으로 말한 것이라면 그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 혹여 더 한 것이 숨어 있을까 그게 걱정이다. 자칫 잘못되면 해외자원개발업계는 또다시 주저앉을지 모른다." 

산업부 홈페이지 캡쳐. 최근 산업부는 홈페이지에 '동해심해가스전' 카테고리까지 만들어 관련 사안을 적극 해명하고 있다.
산업부 홈페이지 캡쳐. 최근 산업부는 홈페이지에 '동해심해가스전' 카테고리까지 만들어 관련 사안을 적극 해명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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