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공학박사)
한세경 경북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한세경] 몇 년 전, 국내에서 전기차 충전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필자의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충전기 사업의 본질은 부동산업이다.” 당시에는 우스갯소리로 여겼지만, 이 말 속에는 아주 중요한 시사점이 담겨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 전기차 충전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는 비공식적으로 수백여 곳이 넘고, 이 중 일정 요건을 갖추어 충전기 보조금 수혜 자격을 얻은 곳이 올해만 40여 곳에 이른다. 통상 한 분야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경쟁 업체들이 공존하기란 쉽지 않은데, 유달리 전기차 충전사업 분야에서 업체들이 난립하는 이유가 앞서 언급한 충전 사업의 본질이 부동산 임차업이라는 말과 맥이 닿아 있다.

현재 충전사업만으로 수익을 내면서 기업을 영위하는 충전사업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 정부가 주는 보조금 정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특히 완속 충전기의 경우, 공용 충전기로서의 요건만 갖추면 고정액의 보조금 지급이 무조건 이루어진다. 그 금액 또한 충전기 제조 원가를 훨씬 상회한다. 그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의 충전기 보급률은 전기차 두 대당 한 대 꼴로 세계 어느 곳보다도 높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조금의 어두운 측면이 존재한다. 충전기를 설치할 부지의 면적이 곧 보조금 수령 금액을 결정하기 때문에 충전사업자는 사업의 본질인 충전서비스의 차별화를 통한 경쟁보다는 부지 확보를 위한 영업 경쟁에 더욱 골몰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엔 아파트 등에 충전기 설치 영업을 위한 프리랜서 영업인원이 4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아파트 입대위에선 설치 조건으로 운영 이익의 일부를 수수료로 요구하기도 하며 심지어 완속 충전기의 경우 설치비용을 당연히 무료로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다.  이게 바로 충전 서비스 질에 따른 보조금 차등이 없는 일괄적 보조금 지급정책과 이로인해 사업자 간의 충전 서비스 수준차이가 사실상 충전용 콘센트(전원) 제공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배터리에게 충전은 밥을 먹는 일이다. 사는 일이 먹는 일이고, 우리의 건강이 대부분 먹고 자는 것에 의해 결정되 듯, 충전행위는 배터리의 수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며 화재와 같은 안전사고를 일으키거나 혹은 예방할 수도 있다. 즉, 배터리 상태에 따라 맞춤 충전을 하여 수명을 연장할 수도 있고, 배터리 셀 내부 단락 등 이상 현상을 조기 감지하여 전력 차단이나 사용자 알림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지만 확보하면 동일하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 정책은 이러한 충전 서비스 향상을 위한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근 환경부가 화재예방을 위해 전기차의 배터리 데이터 수집 기능을 갖춘 충전기에 추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정책 역시 데이터를 전기차에서 환경부 서버로 전달하는 표준 사양만 만족시키면 보조금이 지급되는 구조여서 여전히 충전사업자의 자발적 서비스 품질 개선 측면의 독려 효과는 없다. 

물론 이러한 현실에 대한 충전 사업자 들의 고충도 있다. 충전사업자가 향상된 충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특히 배터리 데이터를 취득할 수 있어야 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해석하여 충전과 연계하는 서비스를 구현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상 충전기는 이러한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상황이며 직접적으로 배터리 상태를 진단할 만한 역량을 갖추기도 어렵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는 별도의 OBD II 디바이스를 통해 데이터를 공급하거나, 이를 기반으로 배터리 진단까지 전문적으로 하는 서비스 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의지만 있다면 충전사업자는 이들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배터리 상태별 맞춤 충전이나 비상정지 등 향상된 충전 경험을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보조금 정책 또한, 이러한 본질적인 충전 서비스 품질향상 노력을 기울이는 사업자에게 보다 큰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개선되어야 하겠다. 결국 차별화된 충전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하려는 충전사업자의 장기적 안목과 이를 추동하는 정책 당국의 실효적인 보조금 정책이 전기차 세계일류의 마지막 매듭임을 다시금 새겨볼 일이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