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개소 석유공사 서산 석유비축기지 탐방
저장용량 1470만 배럴… 정유사에 임대사업도
이상현 지사장 "입출하 最多, 비축은 공사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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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비축기지 원유탱크. 직경 98m, 높이 22m로 축구장 길이와 비슷하다. 1기당 저장용량은 92만배럴.

[이투뉴스] "고소공포증 없으시죠? 저장탱크 위로 올라가 봅시다. 높이가 22m나 됩니다. 제가 뒤에서 따라 올라갈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웃음)"

지난달 23일 석유공사 서산비축기지. 석유공사 9개 비축기지 중 2005년 건설된 가장 최신 기지다. 천안아산역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있다.

충청지역 정유사(HD현대오일뱅크) 및 석유화학업체와 인접해 있는 중부권 전략비축시설이다. 비상사태 시 원유와 석유제품을 방출하는 대형 곳간이다. 석유기업들이 물동량이 부족할 땐 제품을 빌려주기도 한다.  

이정호 서산지사 운영팀장과 탱크 외부 옆면에 있는 철계단을 올랐다. 바닥이 뚫려있어 고소공포증이 밀려왔다. 왼손은 안전모를, 오른손은 난간을 꽉 잡았다.  

2분여를 앞만 보며 올라가니 비축기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탱크 상부에 도착했다. 아파트 7층 높이다.

이 팀장은 "저도 처음엔 무서웠는데 어느새 익숙해졌나 봐요. 국가보안시설이라 사진은 찍을 수 없어요. '뷰 맛집(전경이 좋은곳)'인데 아쉽겠어요"라며 웃었다.  

서산비축기지는 전체 28기 저장탱크를 운영하고 있다. 원유탱크 12기, 제품유 12기, 첨가제 4기다. 직접 오른 탱크는 원유탱크로 직경 98m, 높이 22m 규모다.  

원유탱크 1기 저장용량은 92만배럴. 유조차 7300대 물량이다. 우리나라 하루 석유소비량이 대략 260만배럴이니 탱크 3기는 국가 소비분으로 하루치다.     

계단 끝에서 바라본 탱크 지붕은 탱크 높이보다 낮았다. 저장량에 따라 플로핑루프(뚜껑)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알맞게 유류를 보관하도록 설계돼 있어서다. 

"저기까지 원유가 차 있었단 얘기죠. 여름엔 스멀스멀 녹아서 직원들이 들어가서 닦아야 합니다. 원유는 상온에서 붙이 붙지 않아 위험한 건 없어요. 워낙 들락날락하기에 꽉 차있는 경우는 많이 없어요. 저장량은 평균 58% 정도입니다."

이 팀장이  플로핑루프가 내려앉은 만큼 내부 벽면에 달라붙은 원유슬러지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서산비축기지는 원유를 정제한 석유제품도 보관하고 있다.

원유탱크보다 작은 직경 58m·높이 20m 규모이며 저장용량은 30만배럴이다. 경유나 등유는 비축하지 않는다. 저장용량은 원유와 석유제품 포함 전체 1470만배럴이다.

휘발유의 경우 휘발성이 높아 외벽을 두겹으로 만들어 누실이 없도록 민감하게 다룬다. 이 팀장은 "증발 손실도 있어 운영손실률을 0.3%로 보는데, 이건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로딩암으로 시간당 평균 1만5000배럴 선적

카고선박이 서산비축기지 해상접안시설(제티·Jetty)에 접안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카고선박이 서산비축기지 해상접안시설(제티·Jetty)에 접안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저기 오늘 작업할 배가 들어오고 있네요. 아람코 선박인데 항공유를 실을 겁니다. 예정시간보다 늦게 왔네요."

석유공사의 해상접안시설(제티·Jetty)로 이동하기 위해 차로 타고 10여분을 이동했다.

이 팀장은 "비축기지가 바로 해안에 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가 비교적 늦게 문을 열어 어쩔 수 없었다"며 "HD현대오일뱅크는 1980년대에, 우리는 2005년 개소했다. 여건상 접안시설이 조금 떨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축기지와 접안시설 사이 원유·석유류 수송은 땅속에 매설한 파이프를 이용한다. 석유와 석유제품이 섞이면 안되므로 각각의 배관이 필수다.

원유 40인치(102cm) 배관 1개, 컨덴세이트(초경질원유) 24인치 배관 2개, 석유제품 24인치 배관 2개 등 모두 5개가 묻혀 있다. 총연장 7.3km이다.

설명을 듣고 있는 도중 서해안이 눈앞에 펼쳐졌다. 보안시설을 통과하고 긴 도교(다리)를 건너야 접안시설이 나타난다. 서해는 수심이 낮아 선박이 해안에 가까이 올수 없어 2.7km 길이 도교를 놨다. 이 팀장이 설명한 파이프가 다리와 나란히 놓여있다.

이 팀장은 "제가 아는 한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라며 "일방통행이라 만일 반대편에서 차가 나온다면 아주 난감할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차에서 내리니 바닷바람이 거셌다. 멀리서 선박이 다가왔다. 길이 240m, 폭 40m, 높이 22m의 11만톤급 유조선이다. 아람코 소유로 이날 항공유 56만배럴을 선적한다.

예인선 두 대가 선박을 밀고 당기며 거리를 조절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기계음이 귀를 찔렀다. 규모가 압도적으로 컸지만 현장 직원들은 익숙한 듯 덤덤했다.

이 팀장은 "오늘 배는 그렇게 큰 사이즈는 아니"라면서 "초대형선박(VLCC) 같은 경우는 길이가 330m쯤 된다. 그럴 경우 예인선이 5대까지 붙는다"고 설명했다.  

접안에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접안이 끝나면 로딩암(Loading Arm)을 통해 선박으로 항공유를 옮긴다. 로딩암은 기름 따위를 주유할 때 쓰는 설비로, 파이프와 연결돼 있다.

팔처럼 움직이면서 자유롭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해수면 높이도 매번 다르고 무엇보다 선박 높이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폭넓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 팀장은 "로딩암은 해수면에서 1.5m까지도 내려가고 위로는 20m 이상까지도 올라간다"며 "오늘은 로딩암 2개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종 선적까지는 20여시간이 소요된다. 시간당 평균 1만5000배럴을 실을 수 있다. 해당 선박의 경우 선적에 하루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미니인터뷰] 이주현 서산지사장 "석유개발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주현 지사장은 석유개발사업(E&P) 못지않게 비축사업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 지사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주현 지사장은 석유개발사업(E&P) 못지않게 비축사업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 지사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울산비축기지, 평택, 거제를 거쳐 여기에 왔습니다. 본사에서도 비축사업본부에 있었고요. 비축업무만 줄곧 했습니다."

이주현 서산지사장은 1993년 석유공사에 입사해 30여년을 이 분야에 종사한 비축 베테랑이다. 서산은 지상탱크에 석유를 비축하지만 울산 등은 지하공동(空洞)을 만들어 저장한다. 양쪽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고. 

"예전에는 지하에 저장을 하는 게 초기 공사비가 더 들어갔습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하니까요. 현재는 비슷한 수준입니다. 일단 지하공동은 보관규모가 훨씬 큽니다. 지상탱크는 이보단 작지만 여러 유종을 나눠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입출하 때 편합니다. 대신 유지관리비가 좀 더 들어갑니다."

<관련기사 2017. 07. 17. [현장을 가다] 변신 꾀하는 울산 석유비축기지>

비축유를 보관하는 본연 업무 외에 수익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임대사업(탱크시설·비축유)과 트레이딩사업이다. 

"현재 공사는 전국 9곳에서 비축유 9600만배럴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비상 시 전국에 120일 가량을 공급할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런데 전체 보관 가능한 양은 1억4600만배럴입니다. 남은 탱크시설를 놀리기 아깝잖아요? 이를 활용해 정유사 대상 임대사업을 합니다."

서산비축기지는 현대오일뱅크(원유탱크 4기·석유제품 1기), 한화토탈(원유탱크 2기·석유제품 1기), 아람코(석유제품 3기)에 시설을 빌려주고 있다. 이들은 자사 석유를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빼내 쓴다. 공사는 시설 수수료와 입출하 수수료를 받는다. 

"과거에는 단순히 비축유만 보관하는 '정적비축'이 대부분이었다면, 현재는 석유를 뺐었다, 넣었다 하는 '동적비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난해 서산비축기지가 벌여 들인 수익은 약 700억원. 최근 3년(2020~2022년) 평균수익 500억원 대비 150% 증가한 수치다. 9개 지사 중 월등히 많다.

"가장 바쁜 지사 중 하나입니다. 입출하 횟수도 가장 많습니다. 실제 지난해 입출하 횟수는 200회가 넘습니다. 해상(선적)과 육상(파이프)를 모두 포함한 수치로, 지난해 항차(航次)는 53회입니다."

이 지사장은 석유개발사업 못지않게 비축사업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사의 기본 근간이라고. 

"비축사업으로 전체 공사 직원 인건비 정도는 충당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석유개발사업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굴곡이 있기 마련인데 그 시간을 벌어다 줄 수 있는 게 비축사업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공사는 자본잠식에서 오랜만에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비축사업 공도 꽤 있지 않을까요.(웃음)"

서산비축기지 전경. 
서산비축기지 전경. 

<서산=김동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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