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의 에너지자급률은 최근 10년간 14~16%에 머물고 있다. 바깥에서 일이 터지면, 안에서 받는 충격이 더 큰 나라다. 그런 한국이 2021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에너지위기를 넘긴 방법은 '공기업 빚내기'이다. 원가가 오른 만큼 요금을 올려받아야 했지만, 정부가 막았다. 한전은 2022년에 kWh당 162.5원에 사들인 전기를 120.5원에 판매했다. 송전비용 등을 고려하면 62원씩 밑지는 장사다. 이듬해 전기료를 소폭 조정했지만, 손실폭만 줄어 작년에도 kWh당 평균 14.9원씩 적자를 냈다. 이렇게 2년 새 늘어난 부채만 47조원에 달한다.

국제 에너지가격이 좀 떨어졌으니 한전 형편도 나아졌을 거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빚을 또 다른 빚으로 돌려막는 처지다. 올해 6월말까지 74조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반년 새 이자만 1조4500억원을 물었다. 급기야 작년에는 발전자회사들로부터 3조2000억원의 중간배당을 받아 급한 불을 껐다. 창사 이래 처음이다. 회사채 발행한도를 넘기면 부도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 한전이 어떻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지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전은 발전사들에게 매월 4일, 12일, 22일, 25일 전력구입비를 지불한다. 그런데 곳간은 비어있고 전기료의 50%이상은 22일에 몰려 걷히는 상태다. 다른 결제일에 부족한 자금을 그때그때 사채로 메우고 있다. 아무리 신용등급이 높다 해도 돈을 꾸는 기업은 ‘을(乙)’이다. 자금부족이 예상되면 보통 전날 오전 9~10시 입찰사이트에 채권발행 공고를 낸다. 이걸 보고 증권사들이 입찰하면, 낮은 금리 순서로 원하는 조달액을 채워 낙찰을 한다. 증권사들은 보통 오후 4시까지 대금을 보내지만, 종종 연기금 등의 원천자금 지체로 제때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한전 경영난 이후 오후 3시까지 전력거래대금을 전력거래소로 입금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다.

2022년 한 해 찍어낸 회사채만 30조원을 헤아린다. 당시 하루에 2000억~3000원씩 입찰을 냈는데, 채권시장에 너무 많은 한전채가 풀리다보니 6% 가까이 금리를 올려도 반응이 시들했다. 다급하게 별도 은행차입을 하고, 어음(CP)까지 몇조원씩 발행하며 위기를 넘겼다. 당시 한전은 전력구입비 지연 입금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전의 발전대금 결제지연이 전력산업과 시장에 미칠 파장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이제 한전은 한발로 벼랑 끝에 선 신세다. 사채로 조달한 자금은 보통 2~3년 안에 이자까지 얹어 갚아야 한다. 올해 새로 발행한 회사채도 10조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 되면, 한전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채권발행이 어려워 진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이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시장 전반의 리스크를 키우는 존재가 되고 있다. 2027년까지 3년 안에 40조원이 넘는 빚을 털어야 한다. 전기료 정상화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상복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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