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규칙개정 실무위에 결제기한·일정 조정안 제출
거래대금 입금일 하루 늦추고 결제주기 4→3회로 축소
"당일결제는 사고리스크 크고, 차수조정은 협의 태부족"

한전이 경영난 이후 전력거래대금을 지급하고 있는 현황(위)과 전력시장 규칙개정위에 제안한 결제일 차수 조정 제안안(아래)이다. 발전대금은 정산일 당일 결제하고, 결제일은 4회에서 3회로 줄여 금융비용을 줄인다는 게 한전의 명분이다. ⓒ그래픽_정은영 기자
한전이 경영난 이후 전력거래대금을 지급하고 있는 현황(위)과 전력시장 규칙개정위에 제안한 결제일 차수 조정 제안안(아래)이다. 발전대금은 정산일 당일 결제하고, 결제일은 4회에서 3회로 줄여 금융비용을 줄인다는 게 한전의 명분이다. ⓒ그래픽_정은영 기자

[이투뉴스] 천문학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한전이 금융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발전사 전력거래대금 지급일을 하루 늦추고, 결제주기도 기존 한 달 4회에서 3회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결제일당 1조원 이상의 대금이 오가고 이해당사자인 발전사업자만 6300여곳에 달하는 사안인데 적절성 검토와 시장참여자간 협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최근 이런 내용의 전력거래대금 결제기한 조정 규칙개정안과 결제일정 조정 규칙개정안을 올해 4차 전력시장규칙개정위원회(규개위) 부의안건으로 제시했다. 오는 23일 열리는 규칙개정 실무위원회에서 상급 규개위 부의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적절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어 2개안 모두 상정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전의 제안은 간략히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입한 비용을 전력거래소 기관 계좌에 입금하는 날을 하루 늦추고, 발전대금 결제주기도 한달 4회에서 3회로 줄이자는 것이다.

현행 전력구입비 지급 규정을 보면 한전은 한 달에 4회 도래하는 결제일 전날 오후 3시까지 대금을 전력거래소 계좌로 입금해야 한다. 결제일시를 위반하면 전력거래소는 채무불이행으로 간주해 권원확보 절차를 이행해야 하며, 그 사유가 고의나 과실일 경우엔 전력시장규칙 위반으로 보고 자율제재금도 물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한전 경영난 이후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결제금이 모자라 한전이 당일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 증권사로부터 사채 대금을 받는 시간이 오후 4시나 돼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실제 거래소로 대금을 이체하는 시간이 오후 6시를 넘기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앞서 한전은 41조원에 육박하는 전기요금 누적적자와 202조원까지 불어난 누적 부채를 감당하기 위해 발전자회사로부터 중간배당까지 받아내며 부도위기를 넘겨왔다. 급전을 융통하기 위해 올해 4월 발행한 전자단기사채 일평균 발행액도 2조1417억원에 달한다.

어차피 이런 여건이니 거래대금 입금일을 거래소가 발전사로 대금을 지급하는 당일 정오로 변경하자는 게 이번 규칙개정 실무위에 한전이 제시한 첫 번째 제안이다. 대금 입금시점을 16시간 늦춰 기대하는 한전의 금융비 절감효과는 연간 173억원이다.

전력당국은 한전 고충은 일면 이해하지만 만일의 시스템 장애 발생 시 매회 1조원 이상이 결제되는 현행 발전대금 정산에 중대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한 당국자는 “한전이 (결제)펑크를 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후 5~6시는 예사이고, 지연 사유에 대해 귀띔도 없는 경우가 잦다”면서 “결제일 전날까지 입금만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론 채무불이행이 될 수 있다. 거래소가 군소사업자까지 6000곳이 넘는 발전사에 대금을 재지급하는 시간과 만일의 오류 발생 시 대처시간까지 고려하면 결제일 당일 지급은 물리적 위험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제일 하루 전 거래대금 입금원칙은 한전의 재무위기든, 거래소의 시스템 문제든 다양한 위험에 대한 최소 사전방책 마련시간 개념”이라며 “성급하게 그런 규정을 바꿨다가 만일의 사고가 터지면 대금 채무불이행으로 국가적 파급 악영향이 클 것이다. 오히려 그런 논의는 한전이 재무적으로 안정적일 때 하는 게 맞다”고 부연했다.

전력거래대금 결제횟수를 4회에서 3회로 줄이는 두번째 안은 발전사들과 가스공사 등이 직접 이해당사자다. 현행 매월 4일, 12일, 22일, 25일 결제일을 8일, 21일, 28일로 조정해 한전의 전기료 수입시기와 거래대금 결제일을 최대한 맞추자는 제안이다. <표참조>

한전에 의하면 작년 기준 월평균 전기료 수입(8조70억원) 중 53.3%(4조2677억원)는 22일에 몰려 걷혔다. 4일 비중은 11.4%, 12일은 16.1%, 25일은 19.2%에 그쳤다. 반면 전력구입비 결제일 지급액 비중은 4일, 12일, 22일이 각각 29.0%이고 25일이 13.0%여서 수입-지출기간 미스매칭으로 인한 단기사채 발행이 급증하고 조달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작년 단기사채 발행액은 1분기 6조1000억원, 2분기 6조7000억원, 3분기 5조7000억원, 4분기 6조8000억원 등 25조3000억원에 이른다. 전체 전기료 수입의 50% 이상이 집중되는 22일 전후로 결제일을 맞추면 자금조달 여건을 크게 개선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게 한전의 논리다.

이 안에 대해 발전사들은 한전의 마른수건짜기식 대책이 안스러운 수준이지만, 군소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까지 6300여개에 달하는 사업자 정산일정과 관계되는 사안인데다  가스발전사의 경우 가스공사 연료대금 결제일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충분한 사전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한전 입장에선 충분히 낼 수 있는 안이지만, 가스공사 연료를 쓰는 발전사들은 매월 14일과 24일 두번씩 지급해야 하는 연료비 결제일과 맞물려  가스공사와도 청구일 조정 등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올초에도 같은 안건을 냈다가 논의가 부족해 상정이 불발된 안을 아무런 추가논의 없이 그대로 올린 건 소통의지 부족이자 항상 시장참여자 위에서 군림하려는 한전 권위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고 직격했다.

이 관계자는 "어느 정도 규모있는 발전사는 한번에 수백억원씩 연료비를 내는데, 현금유보가 가능한 회사는 모르지만 자금사정이 빠듯한 곳은 그때 그때 결제해야 하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면서 "한전이 어렵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런 때 일수록 이해당사자의 양해와 협조를 구하는 자세와 성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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