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은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태양광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풍력을 제2의 조선산업으로 키워 세계시장을 선점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말뿐이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제조업에 뛰어들었으나, 물건을 만들어도 내다 팔 시장이 없었다. 해외시장은 발아기였고, 내수시장은 알량한 FIT·RPS 물량이 전부였다. 애초 회임기간이 긴 재생에너지 산업은 마음 급한 건설사 CEO 출신 대통령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출처럼 ‘큰 거 한방’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당시 어둥절해진 기업들은 “이런 사업은 정부 말만 믿고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며 자책했다.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신은 이때 골이 깊게 파였다. 정부가 일관된 정책 신호로 산업과 시장의 착근(着根)을 도왔다면 어땠을까. 마찬가지로 말로 끝난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 규제개혁’과 함께 역대 보수정권의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기억된다. 박 대통령이 2014년 에너지신산업 대토론회에서 즉석 제안한 구호는 ‘시장으로, 미래로, 세계로’였다.

두 정권의 그런 ‘유체이탈’ 정책을 지켜본 문재인 정부는 의욕이 앞섰다. 임기 5년 안에 불가역적인 탈핵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룰 기세였다. 하지만 전략은 물론 철학도 빈약했다. ‘왜’와 ‘어떻게’가 사라진 에너지전환호(號)는 금세 동력을 잃었고 ‘해야한다’는 깃발만 요란하게 펄럭였다. 재생에너지의 핵심은 시장과 산업인데, 이념의 도그마에 갇힌 일부 집권 세력은 기득권보다 더 체제전환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 혁명 수준의 전장에서 자리와 주머니 챙기기로 국민적 거부감만 키운 자들을 여럿이었음은 물론이다. 문 정부의 잘못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몇 퍼센트 밖에 높이지 못한 데 있지 않다. 전환의 기회는 한 번뿐인데, 그 과업을 얕잡아 보고 서두르다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시장과 산업을 진공상태로 만들었다는 게 과오다. 유감스럽게도 그걸 인정하거나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를 아직 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조만간 이 비극적인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할 듯하다. 최근 11차 전력계획의 SMR 건설계획이나 포항 영일만 석유·가스전 발표처럼 전개도 예측불허다. 불똥이 어디로 튀지몰라 공무원들도 납작 엎드리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IRA에 이어 RE100과 탄소국경조정제도가 제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데,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한계가 명확한 원전이 만능열쇠인냥 믿고 있다. 재생에너지 산업의 일자리 효과와 시장 혁신 필요성을 운운해봐야 쇠귀에 경일기다. 부풀대로 부푼 에너지공기업 부채의 시한폭탄만 숫자 '0'을 향해 째깍이고 있다.   

이상복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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