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지난해 서울의 전력소비량은 4만9219GWh 이다. 1GW급 대형원전 5기를 100% 부하율로 돌려도 부족한 양이다.(2023년 신고리1호기 발전량 9197GWh, 부하율 99.4%) 그럼에도 서울시 자체 생산량은 5115GWh에 그쳐 소비량 90%를 외부서 조달했다. 같은기간 충남, 강원, 경북의 전력자급률(발전량/소비량×100)은 각각 214%, 213%, 216%에 달했다. 서울이 가져다 쓴 전기가 어디서 흘러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다고 서울의 전기료가 더 비싸거나 대규모 석탄화력·원전을 끌어안고 사는 충남, 강원, 경북의 전기료가 싸지도 않다. 유일한 송전사업자이자 판매사업자인 한전은 송전비용을 모든 전기소비자에 분담시키고 있다. 고속도로로 비유하면, 어디서 출발·도착하든 같은 통행료를 부과한다. 이걸 바꿔 지역별로 전기료를 차등 부과하자는 게 최근 논의되고 있는 지역별요금제다. 정부는 내년에는 도매요금(SMP), 2026년부터는 소매요금(소비자)을 단계적으로 차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최종 판매료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비수도권 도매가격만 떨어뜨릴 것이라 보는 쪽이 많다. 그렇게 되면 적자가 쌓인 한전은 좋겠지만, 지방 발전사업자들은 지금보다 더 싸게 도매전기를 팔아야 한다. 지역 자급자족형 전원인 태양광, 풍력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지난 십수년간 틈만 나면 분산전원을 늘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말과 정책이 항상 달랐다. 올해 발표된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계획과 11차 전력계획(신규 원전 3기 반영)도 마찬가지다. 혹독한 수급위기를 겪고도 여전히 에너지는 산업의 후순위 고려사항이다. 누적적자가 202조원인 한전이 1년 이자로만 4조5000억원을 쓰고 있지만, 전기료 정상화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그런 정부와 정치권이 비교할 수 없이 파괴력이 큰 지역별요금제를 제대로 관철할 거라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데이터센터는 웬만한 소도시 규모의 전력을 24시간 365일 소비한다. 그런데 이런 시설이 지금도 앞다퉈 수도권에 들어서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들이 자진해서 요금이 싼 원전이나 석탄발전소 근처로 가겠다는 수준의 가격신호를 줘야 분산전원 정책이 성공한다. SMP를 찔끔 건드리는 수준의 차등제로는 어림도 없다. 몇 년 전 서울대공원 주차장 태양광 설치계획이 과천시 주민들의 결사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다. 태양광 모듈이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과천시의 전력자급률은 5%도 안된다. 이런 가격체계로는 앞으로도 분산전원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상복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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