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박종배] 세간에 중국 류츠신 작가의 SF 소설을 모체로 하는 미국 드라마 삼체(三體)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떨어져 있는 두 물체의 경우, 중력을 계산하고 이들의 움직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물체가 세 개일 경우, 이들 사이에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세 물체가 어떠한 궤도의 움직임을 보이는지를 다루는 것을 삼체 문제라 한다. 전형적인 물리학의 난제이며, 해석적인 해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우주 어딘가 태양이 세 개여서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하는 문명이 있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한다. 

전력사업은 미래 전력설비의 확충을 결정하는 계획(Planning), 주어진 전력설비를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Operation),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에 대하여 가격과 요금을 결정하는 시장(Market)으로 구성된다. 계획은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운영은 154kV 이상 전력설비와 중앙급전 발전기를 대상으로 하는 전력거래소의 계통운영으로, 시장은 전력거래소의 도매전력시장(CBP)과 한전의 소매시장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전력사업 계획과 운영, 시장은 정부와 거래소, 한전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급자와 소비자가 계획과 운영,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적다. 공급자와 소비자는 세 개의 태양의 위치에 의하여 어떤 때는 풍요를, 어떤 때는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는 드라마의 삼체인(三體人)과 아주 유사한 처지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세 번의 큰 변화를 겪었다. 1961년 기존 3사를 합병하여 한국전력(주)를 설립한 것, 1982년 한국전력공사법에 의거하여 공기업으로 변화한 것, 2001년 발전경쟁을 도입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세 번의 변화를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성공적인 변신을 했다. 우선 전력산업의 첫 번째 목표인 안정적 전력공급은 다른 선진국과는 비교가 의미가 없을 정도의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목표인 경제적 전력공급도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2022년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상황이 급변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한전의 재무구조와 소비자 전기요금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세 번째 목표인 저탄소 전력공급은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선진국 대비 낮아 박(薄)한 성적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지난해 무탄소 발전비중이 40%에 육박하여, EU보다는 20%p 정도 낮지만, 일본보다는 10%p 정도 높고, 미국과는 유사한 수준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며, 저탄소의 전기를 공급하는 국가만이 생존가능하다는 소위 전(電)자생존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전력산업의 중요성은 커졌다. 인공지능, 첨단 반도체, 이차전지 등의 21세기 혁신 산업의 성공 여부는 전기에너지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0여년 동안 세 번의 혁신을 통하여 우리나라 전력산업이 성공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미래 30년의 성공을 이끌 전력대계(電力大計)를 설계해야할 시점이다. 시간은 째각째각 지나가고 있다.  

대계의 중심에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정부 주도의 규제가 아닌 해외에서는 이미 일상화 된 전망으로 변화되어야 하고, 기술 경쟁을 촉진하는 무탄소전원 용량시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무탄소 전원의 시장 진입을 실질적으로 촉진하게 하는 해상풍력법, 고준위법 등의 제정이 전기본 수립보다 더 중요하다. 또한, 현 전력산업에서 가장 시급한 송전망을 적기에 구축하기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전력망법을 조속히 제정해야만 한다.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공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무화 정책(RPS)에서 수요자인 RE100 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경제적이고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하여 계통운영도 변화가 필요하다. 개발 중인 에너지관리시스템(EMS)과 시장운영시스템(MMS), 통합기동정지 프로그램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가격 신호를 체계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 이로부터 전력계통과 도매시장은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운영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마련된다. 전력소매시장은 폭 넓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도매시장가격 및 비용에 연동되는 전기요금으로의 전환을 절실하게 필요하다. 전력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모순과 갈등은 제반 법률을 새롭게 제정하고 시장과 수요자 기반으로 전환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그리하면 미래의 혁신 산업이 우리나라에서 꽃 필 수 있고, 다음 세대에 건강한 산업과 경제를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