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에너지 르네상스시대 거쳐 미래 주력산업으로 성장

정희용 박사(한국도시가스협회 전무)

[이투뉴스] 백두대간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해 아우라지, 영월, 충주를 거쳐 양평에 도착한 남한강은 북한의 금강산에서 발원해 화천, 춘천을 경유한 북한강과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이 된다. 두 개의 한강 상류들은 매우 맑으며, 힘차고 거침없이 흘러 중류에 이르면 풍부한 유량을 형성한다. 완만하게 흐른 한강은 하류지역에 도착해 기수역(汽水域, brackish water zone)을 형성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은 통상 염분의 농도가 0.5~30퍼밀(‰)로, 강이 품고 바다가 키운 뱀장어와 연어와 같은 물고기는 물론 재첩과 갑각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강의 상류와 같던 초창기의 국내 도시가스사업은 국민적 관심과 천연가스의 경제성 등 여러 장점 및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1980년 최초 공급 이래 10년 만에 100만 가구, 20년 만에 800만 가구를 공급하기에 이른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공급가구수 연평균 증가율이 30.6%에 달할 정도다. 

강의 중류에 해당하는 정체기에도 한강의 유량만큼 풍족한 여유가 있었다. 다양한 수요처의 개발과 공급확대로 2011년에는 1500만 고객을 확보했다. 그러나 2000만 고객에 근접하면서 국내 도시가스사업은 어느덧 강 하구의 기수역에 도달하게 된다. 수요 정체를 넘어 수요 감소가 지속되며 요금 규제와 안전규제는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등 경영환경은 악화일로다. 탄소중립의 영향으로 과학적 검증도 없이 산업의 미래가치는 평가절하 되고 있다.  

기수역은 강물의 마지막임과 동시에 바다의 시작점이다. 도도히 흐르던 한강도, 휘몰아치며 유럽 6개국을 관통하는 라인강도 하구에 이르면 기수역을 형성한다. 기수역의 생물들은 처절한 적응기를 거쳐 바다로 간다. 적응 훈련에 실패한 생물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수역은 다양한 생물들의 공존의 터이고 야생 적응장이기도 하다. 기수역에는 은어, 웅어 등 왕에게 진상했던 최고급 어종도 산다. 

올해 6월로 한국도시가스협회는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내년이면 가스 공급 45년이 되는 국내 도시가스사업은 기수역과 같은 형국이다. 기수역은 혼탁하다. LPG, 열과 같은 전통적인 경쟁자와 레드오션에서 출혈경쟁을 하고 있다. 지금은 전력, 재생에너지와의 경쟁이 뜨겁다. 여기에 SMR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위협은 물론, 이종산업과 비즈니스가 결합하는 신비즈니스모델도 경쟁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수역의 혁신에서 새로운 먹거리와 미래를 찾을 수 있다. 한강 하구의 장항습지는 대표적인 기수역이지만 지뢰밭과 버려진 쓰레기로 가득했던 척박한 하구역이었다. 그러나 고양시와 시민들의 노력,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장항습지는 람사르습지로 거듭났다. 생태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증 받아 지금은 1000종이 넘는 생명체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도심 속의 탄소 저장고로 변신했다.

이제 도시가스사업은 기수역에서 혁신의 칼을 갈아 대양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양의 파고는 끊임없이 뭍으로 향하고 있다. 바다는 강물의 종말이지만 어떤 물도 받아주는 해불양수(海不讓水)의 표상이기도 하다. 기수역에 머물면 썩고, 바다로 나아가면 살 수 있다. 도시가스사업은 에너지전환이라는 대양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아가야 한다. 2100만 고객과 5만㎞가 넘는 배관망과 최첨단 통합안전관리시스템이 이룩한 시스템적 성과는 기수역의 혁신에 따라 더 많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 

아울러 천연가스가 가지고 있는 확장성(Variety)과 분산에너지자원의 장점은 에너지전환시대의 가교 에너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것으로 확신한다. 또한 에너지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 받는 CCUS나 e-메탄과 같은 혁신기술이 상용화 되고, 수소와 같은 무탄소 에너지의 공급이 확산된다면 국내 도시가스사업은 제2의 에너지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미래의 주력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국내 도시가스사업이 혁신의 기치를 높여 기수역을 벗어나 대양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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