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기반 효율화 외치면서도 에너지가격 현실화는 나 몰라라
‘효율화가 제1의 에너지원’ …정책·제도·시장 모두 변화 절실

“원가와 동떨어진 가격이 에너지효율화 추진동력 꺾어”

[이투뉴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에너지 수요관리 강화, 에너지 효율혁신, ESCO 활성화를 외치지만 별반 달라지는 게 없다. 1등급 냉장고를 구입하면 최대 16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나 실제 에너지효율 개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소상공인 지원정책에 불과하다. 결정적인 것은 에너지가격이다. 원가와 동떨어져 낮은 수준을 유지해서는 백약이 무효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에너지효율 정책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놨다. 대다수가 구호에만 그치는 정책일 뿐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EU를 비롯한 주요 국가는 에너지효율 향상을 정책 1순위로 삼고 있다. 산업·건물·주택 분야의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도 에너지효율을 피해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액은 200조원을 넘겼다. 수입품 중 1위는 단연 원유였다. 이뿐만 아니라 반도체를 빼면 3위 천연가스, 4위 석유제품, 5위 석탄 및 고체연료로 상위 5개 품목을 휩쓸었다. 2022년에는 이보다 더 많았다. 에너지 수입에  2164억달러(약 280조원)를 사용, 총수입액 7310억달러 중 무려 30%가 에너지를 들여오는 데 쓰였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수입한다. 원자력발전을 포함하면 수입의존도가 80%대 초반으로 올라간다는 통계도 있지만 원전 연료인 우라늄 역시 전부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급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절대수요를 줄이려는 노력보다는 공급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에너지소비당 부가가치 비율인 에너지원단위가 형편없는 수준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에너지효율을 제1의 에너지원으로 삼아 공급중심이 아닌 효율 혁신에 나서겠다”고 외쳤지만 아직 반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를 비롯해 지난해 에너지원단위가 일부 개선됐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요인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1∼2년 반짝 개선이 아닌 장기적인 흐름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 EU·미국 효율화 정책 최우선 불구 우리는 제자리걸음
지난 4월 미국 정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소법에 따른 가정용 에너지 리베이트 프로그램을 위한 뉴욕주의 자금지원 신청을 승인했다. 주택 에너지효율 개선에 88억달러(한화 12조2000억원)의 재정을 투자하는 내용이다. 주택 에너지효율이 올라갈 경우 가정들이 연간 10억 달러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이산화탄소 및 기타 온실가스의 최대 배출원인 주거 및 상업용 건물의 넷제로를 위해 2005년 대비 건물 내 에너지이용 집약도를 2035년까지 35%, 2050년까지 50% 감축한다는 목표도 내놨다. 특히 미 정부는 에너지효율 목표 달성을 위해 가격적정성(affordability) 등 3대 전략을 시장·정책 이정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은 더욱 적극적이다. 지난해 ‘에너지효율 지침’을 개정, 모든 정책 및 투자 결정 시 에너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도록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등 에너지 위기 해소를 위해선 에너지효율 개선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2030년까지 최종에너지 소비량 11.7%를 감축하는 데도 합의했다. 이를 위해 ▶에너지 절약의무 부여 ▶2024년 0.8%부터 2030년 1.49%로 의무비율 단계적 강화 ▶공공부문은 매년 1.9%씩 의무감축 적용 ▶효율화 잠재성 평가 및 효율화계획 수립 의무화도 명시했다.

올해 들어선 ‘에너지 효율화 지원법’을 도입했다. 구체적으로 에너지 성능이 낮은 건물의 개조를 지원하기 위해 비주거용 건물의 최소표준을 도입하는 한편 주거용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로드맵도 설정했다. 특히 2030년부터 모든 신축건물(주거용 및 비주거용)을 탄소배출 제로 건물로 만들기 위한 표준을 제시했다. 이밖에 화석연료 및 보일러 단계적 폐지(∼2040년) 계획도 내놨다.

윤석열 정부도 2022년 6월 첫 번째 에너지위원회를 열어 오는 2027년까지 에너지 국가 에너지효율을 25% 개선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당시 정부는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아직 시장원리에 기반한 효율화 정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중소기업 지원방안과 함께 전기를 적게 쓰면 요금을 되돌려 주는 에너지 캐시백 등 주로 보조금 및 캠페인성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 에너지가격 수준에서 효율화 누가 나서나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유가는 이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으나 천연가스는 그러지 못했다. 2020년 mmbtu당 3.2달러 수준이던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이 40달러까지 12배 넘게 오른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전기와 도시가스, 지역난방의 생산원가가 크게 뛰어 올랐다. 

러시아발 천연가스가격 급등에 세계는 일단 에너지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튀르키에는 130% 넘는 인상을 단행했다. 아울러 네덜란드 100%, 이탈리아 70%, 영국 60%, 독일이 45% 가량의 요금을 올리는 등 대부분의 국가가 외부요인을 에너지가격에 반영했다. 러시아산 파이프라인-가스(PNG) 공급이 끊긴 유럽이 직격탄을 맞았고, 나머지 나라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인상수준은 20%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쓰는 LNG 역시 10배 가까이 올랐으나 원가인상 요인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 셈이다. 이같은 상황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한전은 누적부채가 200조를 넘어서면서 하루에만 이자로 120억원을 내고 있다. 가스공사 역시 올 2분기 도시가스 미수금이 13조원을 넘어섰다. 2020년말 6000억원대에 그쳤던 미수금은 2022년말 8조6000억원, 2023년말 13조원으로 매년 폭증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화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제1의 에너지원이다. 윤석열 정부 첫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창양 장관의 발언이다. 그는 “우리 정부도 에너지정책 방향을 공급 중심에서 탈피해 수요효율화 정책으로 과감하게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외침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산업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화 관련 법제나 정책의 틀은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다만 지속적인 제도 보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효율 투자의 3가지 기제(전기요금, 인센티브, 제도 운영)가 미흡해 성과창출에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분석했다.

시장원리에 기반한 에너지효율화 약속은 아직 먼 얘기로 들린다. 특히 국가에너지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물론 효율혁신 종합대책 등을 통해 수차례 약속한 ‘원가 변동을 적시 반영할 수 있는 합리적인 에너지 가격제도 운영’은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공급중심에서 수요효율화로 전환하겠다는 정책동력도 크게 약화됐다. 예산과 조직 확대 역시 구호 뿐이다. 실무부서나 산업부는 그나마 의지는 보이고 있지만 대통령실을 비롯한 국가 차원에서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다.

인식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 한 겨울에 보일러 펑펑 쓰면서 반팔 입은 채 생활하고, 폭염에 문 열고 에어컨을 가동해선 절대치를 줄일 수 없다. 퍼주기, 절약, 캠페인도 한계가 있다. 당장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고효율 제품으로 변경하면 에너지요금 차액을 이용해 상쇄할 수 있는 ESCO 사업 등이 있지만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루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전기와 도시가스, 열요금까지 모두 원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공급하는 상황에서 산업체나 국민이 나서 효율화를 추진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에너지 효율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첫 번째 이유로 가격정책을 꼽았다. 한마디로 에너지가격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어 그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에너지 다소비 사업장이 많은 대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서는 한편 고효율 설비투자 효과에 대한 모니터링과 검증도 필수”라고 지적했다.

채덕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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