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투, 美 20MWh·스페인 8.8MWh 수출 성사
수명·용량·안전 장점 불구 내수시장 없어 고군분투

에이치투(H2) 계룡사업장내 바나듐흐름배터리(VFB) 생산라인. 직원이 194kWh급 블록형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에이치투(H2) 계룡사업장내 바나듐흐름배터리(VFB) 생산라인. 직원이 194kWh급 블록형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투뉴스] 시장점유율 기준 '세계 1위' 2차전지기업인 CATL의 나트륨 배터리 상용화 소식에 배터리 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삼원계(NCM) 리튬이온배터리(LiB)로 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중국계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예상 밖 선전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터라서다. 일찌감치 태양광·풍력으로 중국의 굴기를 경험한 이들은 중국기업들의 파괴적 기술혁신과 성장저력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은 2016년 이후 추진된 에너지신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용량 BESS(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를 확대 설치한 나라다. 배터리용량 기준 설치량이 2022년말 10GWh를 넘어섰다.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한 해 설치량이 3.83GWh(2018년)에 달한 적도 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50여건 이상 발생한 화재와 정부 지원정책 축소로 내수시장의 불씨는 사그라든 지 오래다. 현재 재생에너지 BESS 수요가 팽창하는 해외시장 일감으로 근근히 ESS 산업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립한 ‘ESS산업 발전전략’은 내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목적이 있다. 정부가 10차 전력수급계획에서 도출한 2036년 ESS 필요량은 26.3GW. 주기별 필요량은 각각 30분 이내 단주기 3.66GW, 4~8시간 장주기 20.85GW(4시간 4.22·6시간 15.58·8시간 1.05GW), 8시간 이상 양수 1.75GW이다. 단주기는 이미 LiB가 장악하고 있으므로, 시장의 관심은 가장 용량이 크고 주인공이 정해지지 않은 장주기ESS(LDES, Long Duration Energy Storage)로 쏠리고 있다.

2036년 수요량 가장 많은 장주기ESS
H2, 자체기술로 VFB 국내 제조·생산

LDES는 저장매체와 기술에 따라 압축공기에너지저장(CAES), 액화공기에너지저장(LAES), 중력에너지저장(GES), 열에너지저장(TES), 바나듐플로우배터리(VFB), 바나듐이온배터리(VIB) 등으로 나뉜다. H2, Inc.(에이치투)는 자체 기술로 VFB(Vanadium Flow Battery)를 제조·생산하는 토종기업이다. 2013년 국내 최초로 VFB를 상용화해 다양한 국내외 실적을 쌓은 업력 15년차 기업이다. 그간 리튬계 대기업들의 그림자에 가려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 한때 OCI와 롯데 등의 기업이 VFB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었으나 기술 및 사업화 문제로 철수해 현재는 에이치투가 사실상 국내 유일 기업이 됐다.

글로벌 경쟁사는 일본 스미토모전기공업, 독일 AMG, 중국 룽커파워 등이다. 출발은 이들보다 늦었지만 가격이나 기술 경쟁력은 비교우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금까지 7개국 16개 상업용 프로젝트에 40MWh를 공급했다. 특히 올해 말 미국에 4시간 연속 충·방전이 가능한 현지 최대 20MWh를 설치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스페인에 8시간 용량 8.8MWh를 납품해 본격적인 해외시장 공략에 나선다. 지난해 충남 계룡시에 연산 330MWh급 세계 최고수준 VFB 전용공장을 준공했다.

현재 대전 본사와 서울연구소, 계룡사업장에 연구인력 38명 등 모두 78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화와 포스코가 전략적 투자자로, KB인베스트먼트와 산업은행 등이 금융투자자로 나서 지금까지 562억원을 투자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00억원이다. 임성묵 에이치투 사업개발3팀 이사는 “발전용 (ESS)시장이 예상보다 늦게 열리면서 LDES 사업화가 늦어진 측면이 있다”며 “올해 호주에서 8시간 장주기 발주가 나오고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등에서 500MW~1GW LDES 시장이 개화하고 있다. 에이치투는 상용시장에 대한 준비를 진즉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동서발전 울산화력에 2020년 11월 설치된 225kW/1.1MWh VFB
동서발전 울산화력에 2020년 11월 설치된 225kW/1.1MWh VFB

7개국 16개 사업 프로젝트에 40MWh 공급
지난해 계룡시에 330MWh 전용공장 건립

VFB가 유망 LDES 기술로 주목받는 이유는 긴 수명과 대용량, 안전성 덕분이다. LiB는 충·방전 시 활물질(리튬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 분리막을 직접 오가며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반면 VFB는 양극활물질(바나듐 4+, 5+이온)과 음극활물질(바나듐 2+, 3+이온)을 별도로 사용하면서 이를 전기화학적으로 반응시켜 전자만 주고 받는다. 충전량을 1~100%까지(SOC) 다 써도 연간 용량 감소율이 0.1%에 불과해 20년을 운용해도 98%의 성능을 보전한다. 통상 LiB는 SOC와 DOD(충전심도)를 제한해도 연간 2.5%씩 용량이 떨어져 제작사가 15년 이후 70% 수준을 보장한다.

저장용량 증대가 용이하고 화재 걱정이 없는 것도 VFB만의 장점이다. 스택으로 출력(kW)을 결정하고, 전해액 양을 늘리는 것으로 저장용량(kWh)을 손쉽게 확장할 수 있다. 화재나 폭발의 위험이 없는 수계(水界) 전해질이어서 영하 20℃부터 영상 50℃까지 상온 운용이 가능하다. 나트륨황전지(NaS)에서 발생한 화재는 있어도 VFB 화재가 지금까지 ‘0건’인 이유다. LiB 화재는 리튬이온이 양극·음극을 오가며 발생시킨 부산물(리튬메탈)로 인해 생성되는 덴드라이트가 분리막을 찢고 단락을 일으켜 주로 발생한다.

방전시간이 4시간 이상인 현장은 LiB 대비 경제성도 낫다는 판단이다. 김현정 에이치투 사업개발 2부문 이사는 “LiB의 경우 상온유지를 위해 에어컨을 상시 가동해야 한다"면서 "연간 실질 운영비나 생애전주기 LCOE(균등화비용)는 2030년까지도 VFB가 가장 우수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단기적으론 리튬계 경쟁력이 높지만, 향후 주기별로 ESS 생태계가 다양해 지므로 긴호흡으로 봐야한다"면서 "중국, 영국, 미국이 별도 비(非)리튬계 ESS시장을 만들어 제도적으로 육성하는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에이치투는 1500V급 고전압 VFB로 효율을 높였고 세계 최고 출력 및 에너지밀도를 자랑하는 유틸리티급 컨테이너형 VFB를 개발·생산해 국내외에 공급하고 있다. 

바나듐 전해액을 늘려 배터리 용량을 손쉽게 대형화 할 수 있다.
바나듐 전해액을 늘려 배터리 용량을 손쉽게 대형화 할 수 있다.

4시간 이상 방전서 LiB대비 경쟁력 높아
中·英·美도 제도적으로 시장 만들어 육성

VFB 업계는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정부의 전향적 비리튬계 배터리 육성·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LiB와 다른영역에서 경쟁하는만큼 별도시장을 만들어 국내 기업들이 트랙레코드를 쌓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김현정 에이치투 이사는 "비교우위 경쟁력을 갖고도 올해 2월 스페인 시장 진출 때 국내 실적이 없어 현지 파트기업을 구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R&D와 기술실증은 충분히 했다. 이제는 실용적이고 실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국가 에너지안보와 직결된 LDES를 중국이 패권국인 리튬 하나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다. 각국이 전략·제도적으로 비리튬계 상용화를 지원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임성묵 이사는 VFB 경쟁력과 관련, "기술은 완성 단계로, 이제는 규모의 경제 문제"라고 했다. 일정규모 이상의 물량이 확보되어야 원가절감 요인이 발생하는데, 내수시장이 없다보니 국내 부품공급사들조차 밸류체인 형성에 미온적이라고 한다. 임 이사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VFB도 충분히 단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며 "우리나라가 서둘러 움직이지 않으면 훗날 비리튬계 LDES도 해외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상복 기자 [email protected]

에이치투 계룡사업장
에이치투 계룡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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