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kV 전력망 누적 고장사고 71건
9건 이중고장, 3건은 자동복구 실패
"무턱대고 기준 낮추자는 건 무책임"

2005~2023 국내 765kV 송전선로 누적 고장건수 및 고장규모. 전체 71건 가운데 다중고장(2회선 고장)이 9건에 달하며, 이 가운데 자동복구(재폐로)가 안된 사고도 3건이다. 1회선 고장의 경우 62건 가운데 재폐로 실패건수는 13건(재폐로 OFF 상태 포함)에 달한다. ⓒE2NEWS 그래픽_정은영 기자
2005~2023 국내 765kV 송전선로 누적 고장건수 및 고장규모. 전체 71건 가운데 다중고장(2회선 고장)이 9건에 달하며, 이 가운데 자동복구(재폐로)가 안된 사고도 3건이다. 1회선 고장의 경우 62건 가운데 재폐로 실패건수는 13건(재폐로 OFF 상태 포함)에 달한다. ⓒE2NEWS 그래픽_정은영 기자

[이투뉴스] 동해안~수도권 HVDC(초고압직류송전) 건설지연으로 동해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들의 발전제약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현행 신뢰도 기준을 낮춰 제약을 일부 해소하자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765kV 송전선로의 이중고장(2회선 동시고장, n-2)에도 문제가 없도록 설정된 기준을 완화하면 발전기들을 정상 가동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이들은 “가능성이 극히 낮은 사고(이중고장)까지 상정해 계통을 운영하는 건 비효율”이라며 동해~태백~가평을 잇는 765kV를 단일고장(1회선 고장, n-1) 기준으로 탄력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투뉴스>가 765kV 상업운전 이후부터 작년까지의 송전선 고장 상세 내역을 확인해 보니, 전력망 중 가장 신뢰성이 높고 고장확률이 적다고 알려진 765kV에서도 매년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모두 71건의 고장이 발생했고, 이 중 '100년에 한 번 빈도'라던 2회선 동시정지(이중고장)도 9건에 달했다. 심지어 이 중 3건은 시스템 자동복구(재폐로)에도 실패해 해당 선로가 본래 기능을 상당시간(또는 일시) 상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765kV 상세 고장내역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14일 본지가 입수한 2005~2023년 765kV 송전선로 고장 집계 데이터에 따르면, 이 기간 신태백~신가평·신안성~신가평·신서산~신안성·신서산~당진화력·신서산~신중부·북경남~신고리 등 주요 765kV 전력망에서 1회선 고장은 62건, 2회선 동시고장은 9건이 발생해 당국을 긴장시켰다. 이들 선로가 적을 때는 3~4GW, 많게는 6GW가까이 동해·서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잦은 고장 원인은 불시에 송전선로나 송전탑에 내리꽂히는 낙뢰(벼락)였다. 전체 71건 가운데 54건을 차지했다. 이 중 1회선 고장은 모두 재폐로에 성공한 반면 작년 12월 신태백~신가평 고장은 1회선이 실패했다. 재폐로는 송전선로 양쪽의 보호계전기가 고장을 감지해 밀리초(ms) 단위로 짧은 시간에 차단기를 작동했다가 다시 전력을 공급하는 일종의 복구시스템이다. 대부분은 정상 동작해 고장영향이 파급되지 않지만, 전력 재투입에 실패해 송전이 전면 중단되는 경우도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

낙뢰와 산불 등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에 의한 고장도 61건이나 됐다. 이 중 2008년과 2011년 신서산~신안성 선로에서는 바닷가 가공선로의 애자 등에 달라붙은 염분이 우기에 섬락으로 절연을 파괴하는 염진해로 1개 선로가 끊기거나 재폐로했다. 고장원인별로 구분하면 자연재해가 61건으로 가장 많고 뒤이어 설비결함 2건, 외물접촉 2건, 자연열화 2건, 고장파급 2건, 제작불량 1건 순으로 나타났다.

전력 전문가들조차 깜짝 놀라는 수치는 765kV 이중고장 횟수다.  이 망(網)의 2회선 동시고장 확률을 극히 낮게 봤으나 지금까지 9번이나 발생했고, 이 가운데 3건이 자동복구에 실패해 아찔한 상황이 전개됐었기 때문이다. 2회선 동시고장 복구 실패 내역을 보면 2007년 5월 신태백~신가평에서 설비고장으로, 2022년에는 산불로 신태백~신한울과 신서산~당진화력에서 송전이 중단됐다. 작년 12월에는 신태백~신가평 2개 회선이 동시에 낙뢰를 맞아 1개 선로만 재폐로에 성공하기도 했다. 

단일고장(1회선) 62건 가운데 재폐로 실패사례도 12건이나 됐다. 2011년 2월 신서산~신안성에서는 염진해로, 2015년 북경남~신고리원전에선 변전설비 고장파급으로, 이듬해 같은 선로에선 빙설해(적설)로 20여분에서 최장 1시간 가량 선로가 불통상태가 됐다. 2021년 이후 절연파괴, 변전고장 파급, 산불, 지락고장, 낙뢰 등으로 발생한 단일고장도 7건이다. 기후변화로 다중고장이 증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중(다중)고장 비중은 강원·경북 산불로 2021년 5.6%에서 이듬해 18.0%로 3배 가량 늘었다. 

익명을 원한 계통분야 종사자는 "자동재폐로가 돼 문제없이 넘어간 비중이 많아 다행이긴 하지만, 765kV고장이 이렇게 잦고 이중고장과 재폐로실패도 적지 않다는 건 처음 알았다"면서 "765kV와 345kV는 기간전력망이라 고장 시 파급영향이 워낙 크다. 향후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며, 대책을 세워도 소용없는 낙뢰나 산불 등 자연재해 비중이 높다면 좀 더 보수적으로 계통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뢰도 기준을 낮춰 발전제약을  줄이자는 일부 주장에 대해선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란 지적이 많다.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기준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얘기들이 있는데 그런 판단을 누가 무엇으로 정할 수 있냐. 완화 적용할 뒤 앞으로 설비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정보를 누가 줄 수 있냐"고 반문하면서 "유연하게 적용한다해도 기술적 조작이 오래 걸리는데다 특정지역이나 특정선로만 고장 시 부하차단까지 감수하면서 기준을 낮춘다면 계통내 다른 이해관계자 누가 그걸 납득하겠냐"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계통운영 여건이 많이 바뀐 건 사실이지만 해외는 그런기준에 대해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담 신뢰도 기구들이 있어 기준과 원칙을 새로 만들고 이행여부까지도 확인한다"며 "그런 컨트롤타워나 전문역량이 부재한 상황에서 과학적인 접근과 대안제시 없이 무턱대고 기준을 완화하자는 건 위험하고 무책임하게 비칠 수 있다. 당장 적용가능한 제약완화 기술부터 동원하는 게 순서"라고 일축했다. 

계통전문가인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지금 주장하는대로 신뢰도 기준을 낮추면, 과거에 이미 발생했던 2회선 고장이 반복된다면 2011년 정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전국적인 광역정전이 발생한다는 의미이고 그 규모와 경제적 손실은  상상하기도 어렵다"면서 "특히 원전이 집중 건설된 경우는 안정성을 더욱 강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송전망 건설을 하지 않고 신뢰도 기준을 낮추어서 동해안 석탄 발전기를 돌리고 추가건설되는 원전과 재생 에너지 발전기 건설을 늘리자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직격했다.

이상복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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